가족 여행하다

네팔로 넘어간 16번째 생일...

행복한손군 2016. 5. 10. 15:11


사건사고 많았던 인도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네팔로 간다.

하지만 16살의 생일에 인도와 네팔을 동시에 경험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네팔로 넘어간 16번째 생일.....  


 



 

 

16번째 생일날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갔다.

기차에는 자리가 없고, 버스는 유리창이 깨어지고, 배까지 고프다...

? 뭐지...?‘ 했지만 곧 알아차렸다.

 



인도, 그리고 네팔에서 나의 16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오늘은 바라나시를, 그리고 인도를 떠나는 날이다.

12시가 넘어 기차역에 가방을 내려놓고 가방 더미에 기대 졸며 기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가방에 기대서 잠에 빠지려고 하는 나를 애들이 기차가 도착한다며 깨워서

허둥지둥 일어났는데 갑자기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 주는 게 아닌가!!

처음엔 ? 뭐지...?’했지만 곧 알아차렸다.

내 생일 기념 깜짝 선물이라는 사실을!


우와.... 너무 감동이었다... (흑흑)

얼마나 감동이었으면 과자 케이크에 있었던 그 과자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하이드앤시크와 본본, 그리고 짐 잼이라는 딸기 맛 과자였다. ㅋㅋ)

그렇게 감동의 축하를 받고 나자 잠이 확 깼다.


 



다 같이 정신없이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인도사람들이 우리의 가방 더미를 뱅~ 둘러싸고

우리를 매우 흥미로운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애들이 부른 생일축하 노래를 듣고 호기심에 휩싸여 몰려온 것이다.

 

기차역 바닥에 앉아 우리 주위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올려다보자니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인도사람들의 관심이나, 호기심에는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지만, 오늘은 좀 더했다.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와서 뚫어지라고 우리를 쳐다보는데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한국과 다르게 눈 마주치기를 워낙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눈을 매우 뚫어지라 쳐다보는데,

한국 사람인 나로서는 정말이지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특히 간혹 느끼한 표정으로 눈썹을 꿈틀거린다거나 그윽하게 쳐다보는 아저씨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참 당황스럽다.

인도 여행 중 인도사람과 눈싸움해서 이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듯하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정말이지 시간이 지나도 떠날 생각을 안 했다.

계속 쳐다보며 몰래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손 선생님의 만류로 간신히 우리가 기차를 탈 수 있게끔 비켜주었다. 하지만 그 후 기차에서는......

 



기차 안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일단 기차 안으로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너무 많은 사람이 기차 문을 막고 있었다.

그때 아마 다들 이렇게 느꼈을 거다. ‘. 이제 시작이구나하고.

도대체 저 많은 사람을 어떻게 뚫고 지나가야 할지 참 막막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방법은 단 하나. 밀어붙이기다.

우리는 손샘의 지시를 따라 사람들을 밀어붙이며 기차 안으로 진입하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그러나 기차는 온통 사람들로 꽉 차있고 복도는 좁고, 게다가 커다란 가방까지 메고 있는 상태.

그때부터 정말 정신적 혼란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불이 3기가 아닌가.

일단 우리는 손샘의 지시에 따라 가방을 발 앞에 놓았다.

그리고 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며 가방을 방패 삼아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정말이지 힘들고 피곤하고.. 그래서 점점 갈수록 짜증이 올라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우거지상을 쓰며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어느 인도분들이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잠시 침대에 앉아있으라고 했다.

그러며 하는 말이 디스 이스..! 더 인디안 트레인!’하며 사람들로 미어터질 것 같은 기차 복도를 가리켰다.

나는 정말 힘든 표정을 지어 보이며 끄덕였다.

그분은 내가 사양을 해도 앉을 것을 권하시며 밝은 표정으로 어디서 왔냐고 물으셨다.

나는 코리아라고 말하며 우거지상을 풀려고 노력했다.

정말 모르는 외국 사람들한테까지도 친절하고 남이어도 서로서로 스스럼없이 대한다는 점이 인도사람들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그렇게 겨우겨우 힘들게 내 자리를 찾았고 나는 내 자리를 찾은 즉시 취침모드로 들어갔다.

정말이지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고락푸르에 도착해서는 좁고 더운 버스를 타고 소나울리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걸어서 국경을 통과했다.

생일 날 국경을 통과하다니.. 정말이지 의미 있는 생일인 것 같다.

몇몇 애들이 내 소원대로 국경을 통과 할 때를 맞춰 내 생일 노래를 불러주었다.ㅋㅋ

 



비자신청을 마치고는 점심을 먹은 후 쉬다가 6시에 포카라행 버스를 탔다.

그 버스로 자그마치 10시간 동안이나 타고 가야 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버스가 매우 비좁았다.

그래도 낑낑 짐을 싣고 잠을 청하는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갑자기 나, 시은, 만기 샘, 준범 샘 쪽에 있는 창문 유리가 과자 부서지듯 쪄져적, !!!’하는 소리를 내며 부셔져 버렸다.

정말 한밤중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창가에는 시은이가 앉아있어서 내가 괜찮냐고 등을 쓸어주다가 시은이 겉옷에 붙어있던 조그만 유리 조각이 새끼손가락에 박혀버렸다.

시은이가 입고 있던 옷은 내가 평소 곰 가죽이라고 놀렸던 옷으로 부들부들 양털 재질의 옷이라 조그만 유리조각들이 많이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준범 샘이 서둘러 소독을 해 주고 있는데 그 와중에 만기 샘도 손가락을 다치고...

암튼 온통 난리법석이었다.

 



밤이라 어두컴컴해서 손전등을 키고 그 구간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빗자루를 이용해 주변을 정리했다.

아직 창틀에 들러붙어있는 유리들도 안전하게 밖으로 버린 다음 찬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을 커튼으로 최대한 막았다.

정말이지 어이가 없고도 황당한, 한밤중의 소동이었달까.

 



대충 자리를 치우고 다시 취침모드로 돌입했는데 아무리 바람막이로 몸을 싸매도

어설프게 커튼으로 가린 벌거숭이 창문에서 숭숭 들어오는 바람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은 오고... 투덜대며 자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언젠가 숙소에 도착할 거란 사실을 위안으로 삼으며..